에놀라게이 마지막 승무원, 2014.8.28 사망
Theodore Van Kirk, last crew member of Enola Gay, dies in US aged 93
2014년 8월 28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미군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의 항공 전문가 테오도어 반 커크(Theodore van kirk)가 93년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해외 각지는 에놀라 게이의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의 의견을 바탕으로 전쟁과 원폭투하를 되돌아 봤습니다.
반 커크는 1941년에 미국 육군 항공대 생도가 돼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원폭 투하 훈련을 위해 소집된 제509 혼성 부대에 합류했습니다. 입대할 때 부대를 이끄는 상관으로부터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전쟁을 끝내거나 현저하게 단축시킬 수 있는 뭔가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1945년 8월 6일 새벽 반 커크는 다른 11명의 승무원과 함께 에놀라 게이에 타고 마리아나 제도 티니안에서 출발, 항공기는 맨하탄의 계획으로 극비에 만들어진 원자폭탄을 싣고 있었습니다.
승무원들의 일본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입장
이름 |
당시 직책 |
관련 발언 |
Paul W. Tibbets(폴 티베츠) |
대령 / 기장 |
명령을 받았다면, 군인으로서 당연히 임무 수행해야 한다 |
Robert A. Lewis(로버트 루이스) |
대위 / 부조종사 |
일기장에 '신이여, 무슨 짓을 우리가 한 것입니까'라고 기록했다 |
Thomas Ferebee(토머스 피어비) |
소령 / 폭격수 |
종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했다 |
Jacob Beser(제이콥 베서) |
중위 / 전자전 담당 |
일본이 저지른 진주만 등의 만행을 생각해 봐라. 나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주저없이 참가할 것이다 |
Theodore Van Kirk(테오도어 반 커크) |
중위 / 항법사 |
차악의 선택이 확실하다 |
Richard H. Nelson(리차드 넬슨) |
일병 / 레이더 운용사 |
죽은 인간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
William S.Parsons(윌리엄 퍼슨) |
대위 / 무기 및 폭탄 담당 |
관련 발언 없음 |
Morris R. Jeppson(모리스 잽슨) |
소위 / 무기 부담당 |
더 많은 목숨을 구한 것은 전쟁을 빨리 끝냈기 때문이다 |
George R. Caron(조지 캐런) |
하사 / 후미 기총사 |
후회 없고, 악몽도 꾸지 않는다 |
Robert H. Shumard(로버트 슈머드) |
하사 / 부항법사 |
자랑은 아니지만, 다시 상황이 오면 주저 없이 하겠다 |
Wyatt E. Duzenberry(와이어트 두젠베리) |
하사 / 기관사 |
후회는 없다. 군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 |
Joe S. Stiborik(조 스티보릭) |
중사 / 레이더 담당 |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힘든 일이었다 |
반 커크의 임무는 표적 상공에 기체를 정확하게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전 8시 15 분 에놀라 게이는 히로시마 상공에 도착. 그 표적을 확인한 수십 초 후에 원폭이 투하되고 14 만명이 희생되는 대형 참사가 히로시마에 일어났습니다.
인터뷰에서 반 커크는 원폭투하 뒤에 "검은 타르가 들어간 끓어오르는 냄비처럼 먼지와 불길로 뒤덮힌 히로시마를 봤지만, 전쟁이 끝났다, 혹은 이제 끝날 것이라고 안도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뉴욕타임즈).
미국은 원폭을 투하한 승무원들을 전쟁을 끝낸 구세주로 볼 수 있지만, 핵전쟁의 윤리관과 원폭투하의 필요성은 오랜 세월동안 의문시돼 왔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습니다.
반 커크 자신은 다른 승무원들과 마찬가지로, 히로시마에 원폭투하를 옹호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적과 싸웠다','윤리와 전쟁을 함께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 뒤, "국가는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고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할 일을 하는 용기를 가져야한다"고 지론을 말했습니다(뉴욕 타임즈).
그러나 반 커크는 2005년 AP 인터뷰에서 "대전에서의 모든 경험은 전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핵무기로도 아무 해결을 할 수 없다"고 말해 원폭이 미국인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 믿으면서도 전쟁에 대한 불신감을 보이는 듯 했습니다.
핵무기 폐기에 찬성한 그는 "하지만 누군가 갖고 있다면 자신도 갖고 싶어진다"며 그것이 매우 어려움을 시사했습니다.
일본은 폴 티베츠 기장의 아들에게라도 사죄를 유도하려 했지만 그도 역시 원폭투하는 불가피했다는 입장입니다.
반 커크의 아들은 10살에 돼서야 아버지가 에놀라 게이의 승무원임을 알았다며, "세상은 아버지를 전쟁 영웅이라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좋은 아버지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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