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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인물

윈스턴 처칠의 생애와 이력 2

 

윈스턴 처칠의 생애와 이력 2
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biography 2

 

1897년 인도인 하인과.

 

제대한 뒤에 보어전쟁(Anglo-Boer War)에서 종군 기자가 됐는데 기자인데도 총을 들고 참전하다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하지만 탈출해서 유명해졌고, 이 과정을 집필해 유명세도 타고(책 제목이 'Ian Hamilton's March'), 다음해에 하원의원으로 출마하게 됐으니 그의 일생이 크게 바뀐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군 기자 당시 찰스 워런 사단장에게 '지금 이 상황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용감한 발언을 해서 끌려 나가기도.

포로로 잡혀 탈출했을 때 아무 집에 들어가 '나는 영국인입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했는데 우연히도 그 집은 존 하워드라는 영국인의 집이었습니다. 그는 처칠을 보어인으로 위장시켰습니다. 그 덕에 윈스턴 처칠은 초소를 무사 통과해 기차 바퀴축에 몸을 통여매 탈출해서 모잠비크(Mozambique)까지 48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1898년 이집트 카이로에서(좌). 1900년 보수당 의원 당시(우).

 

1900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 후보로 당선돼지만 조지프 체임벌린(Joseph Chamberlain)이 보호무역론을 주장하자 자유 무역 주의자로서 반발,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이적합니다.


1차 대전에서 그의 실적은 신통치 못한데, 영국군이 연패하자 갈리폴리 전투를 강행해서 영국/프랑스/식민지군 25만명 병력의 피해를 내 영국군 역사상 최대 실패를 기록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해군장관 사임 후 예비역 장교로 복귀합니다.

 

전후 전쟁 장관과 항공 장관으로 취임, 러시아 혁명을 막기 위해 반공산주의 전쟁을 주도하고 붉은 군대의 폴란드 침공을 격퇴했습니다. 그러나 총리가 이 전쟁을 좋게 안 봐서 식민지 장관으로 전임시켜서, 영국 위임 통치령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정책,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이민을 추친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집권하자 '의용대를 만들어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선견지명을 보였으나 아무도 윈스턴 처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 때문에 정치계에서 밀려납니다.


그러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처칠의 예언이 주목받게 됐는데요, 그 덕에 다시 정계에 복귀하고 독일군의 공습에도 런던에 머물렀습니다. 이 때 했던 말이 "내가 만약에 죽는다면, 나의 시체를 독일군이 집무실 의자에서 끌어내려야 될 것이다" 이 때 수많은 무기를 미국에서 받지만 대신 카리브 해 연안 지배력을 잃고 당연히 돈도 많이 냈습니다.


1940년 총리가 돼서 1945년까지 전쟁을 주도, 그리스-이탈리아 전쟁,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에 패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격퇴합니다. 소련과 협력해서 미국과 동맹 관계가 됩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공세로 돌아서게 됩니다.


영국은 미국과 소련 다음가는 전승국 지위를 얻었지만 거의 모든 식민지를 잃습니다. 1951년 다시 총리가 돼서 미국, 소련에 이어 원자 폭탄 보유국이 되고 동남아 조약 기구(SEATO) 참여 등 반공 정책도 펼쳤습니다.

 


윈스턴 처칠 회고록은 날개돋힌 듯 팔려 1953년에는 노벨상까지 받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즉위식에서 가터 훈장도 받고 기사작위도 받고, 1955년 4월 5일 앤서니 에덴에거 총리직을 물려주고 은퇴하고 나서도, 하원의동으로 활동하는 등 2차 대전 덕에 전성기를 맞습니다. 영국 외에서도 많은 나라에서 훈장을 받았습니다. '의회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얻고 1963년에 미국 명예시민권도 얻고, 이 당시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추앙됐습니다.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영국인에게. 런던"이라고만 쓰여져 있는 카드를 우체부가 알아보고 배달했는데, 바로 처칠의 80회 생일 축하 카드.
 

문학 뿐 아니라 그림도 잘 그렸는데 오로지 풍경화만 그렸습니다. 그 이유를 "나무는 나의 그림을 보고 "나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는데요"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는 "나는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을 만난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의 생애와 이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