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인물

Douglas MacArthur 더글러스 맥아더

 

 

Douglas MacArthur 더글러스 맥아더

 

 

 

한국에서는 맥아더로 표기하지만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매카서'다. 어렸을 때 여장을 했다는 말이 있는데 관련 이미지를 찾아봐도 없다. 근거가 있는 말인지...

맥아더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선글라스와 파이프, 그리고 모자인데 저 모자는 미국 육군 모자가 아니다. 필리핀 육군 원수로 취임할 때 필리핀 대통령이 만들어 준 거라고 하는데, 미군으로서의 자부심이 높으니까 미군 모자를 쓸 수도 있는데 왜 필리핀 육군 모자를 고집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어쩌면 그 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더글러스 맥아더라는 인간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유니크한 모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자가 더글러스 맥아더의 상징 중 하나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만큼 모자를 벗고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탈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럼 선글라스는?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맥아더의 젊은 시절 사진은 별로 없다. 출처 : ttp://ww2db.com/image.php?image_id=13106

 

 

맥아더의 아버지는 남북전쟁과 미국VS스페인 전쟁, 미국VS필리핀 전쟁에 참전했던 소년 영웅인 동시에 장군 and 3대 필리핀 총독이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와 함께 놀던 필리핀 아이는 후에 필리핀 2대 대통령인 마누엘 L.케손(Manuel L. Quezon). 그리고 할아버지는 위스콘신 주지사... 이게 끝이 아니라 무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프랭클린 D.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와 먼 친척! 한마디로 뼈대있는 집안.

공부도 잘해서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줄수석으로 연대장 생도도 겸했다. 연대장 생도 겸 졸업수석인데 한동안 그 졸업성적 기록을 깬 생도가 없었다고. 참고로 웨스트포인트 사상 맥아더 이상의 성적을 거둔 사람은 두 명 뿐이다.

 

제1차대전(World War I)에서 30대에 사단장(42 보병단)을 맡아서 미군(US Army) 사단장 중 15번이라는 제일 많은 훈장을 받았다. 3년의 세월을 필리핀에서 보낸 뒤 미국군 최연소 소장으로 승진했다.

 

 

 

 


미국으로 귀환한 뒤에 3군단장을 맡고, 암스테르담 올림픽(Olympische Zomerspelen 1928)에 단장이 됐으며, 1930년 50세의 나이로 대장이 돼서 최연소 진급기록을 갈아치우며 육군참모총장(Chief of Staff)이 됐다. 1932년에는 허버트 후버(Herbert Clark Hoover)의 명령을 무시하고 보너스 군대(Bonus Army)를 강경진압, 100명의 사상자를 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예산을 삭감하려 해서 한판 싸우기도 했는데 그 때 "다음 전쟁에선 우리 병사들이 맥아더가 아닌 루스벨트의 이름을 저주하면서 죽어갈거야!" 라고 말하면서 사임을 신청했다. 루스벨트는 "너, 대통령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고 대꾸했지만 사임을 받아들이진 않았다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1935년까지 임기 연장으로 자성훈장 2개도 받았다.

 

맥아더가 유명해진 건 역시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에서의 활약 덕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현역 복귀, 미국군 극동 사령관 / 남서태평양 사령관으로 부임해서 세계대전 말기에 태평양 전선 절반을 지휘했고 일본점령군 총사령관을 맡게 된다. 그라고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닌데, 초반에 필리핀에서 연패를 거듭했다.

I shall return 이라는 말을 남긴 체 오스트레일리아로 후퇴하지만 호주 민병대를 주축으로 공세에 나서 우회전술로 일본군(Imperial Japan Army)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어느 정도냐 하면 뉴기니 전역에서 동원된 일본군 200,000 명 중에 무려 185,000 명이 죽었다. 일본군이 말하길, "자와의 낙원, 버마의 지옥, 죽어서도 돌아올 수 없는 뉴기니" 필리핀 탈환전에서는 미군 40만 VS 일본군 40만 매치에서 미군은 10,000 명이 죽었지만 일본군은 무려 40배에 달하는 400,000 명이 죽는. 말이 많은 펠레리우 전투에서조차 교환비가 1:9였으니 일본군을 상대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맥아더는 언제나 최전선에 섰다는 말이 있다. 후방이 좋지 않느냐는 조언에 "신이 나를 지켜주는데 내가 죽을 리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걱정하는 부하에게 맥아더를 죽일 총알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만약 일본이 핵 2발에 도쿄대공습 15만명을 숯으로 만든 도쿄대공습(Bombing of Tokyo) 이후에도 항복하지 않았을 경우 이 더글러스 맥아더가 최고 사령관을 맡기로 했다. 이 계획은 영국군 지원세력 + 100척 이상 항공모함, 70만명 이상의 병력에 상륙한 뒤 독가스와 수발의 핵폭탄으로 일본의 병력밀집지역을 초토화시킬 작전이었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일본은 정말로 궤멸했을지도 모른다. 
1944년에는 미 육군 원수(General of the Army)가 된다.

 

 

 

 

 

너무나 유명한 사진. 오른쪽이 천황(Emperor of Japan)이다. 천황이 맥아더한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진도 있는데 일본의 강력한 로비도 있었고 미국도 일본의 자존심을 배려해 관련 사진은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화에 따르면, 천황이 직접 맥아더를 만나러 행차했는데(천황이 궁 밖으로 나간 것은 2,000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한다) 맥아더 본인이 아님은 물론 비서도 아니고 군의관(!)이 맞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엔 GHQ : general headquarters에 군림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한국전쟁 발발 때 주일미군 중 상당수가 한국으로 가게 되자 미국에서 '미군이 없는 틈을 타 일본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때 맥아더는 웃으며 "쇼군의 등에 칼을 꽂을 사무라이는 없다"고 했는데, 과연 대대적 반란이 없었음은 물론 남은 미군을 표적으로 한 테러조차 없이 일본은 조용했다.

한국전쟁에서 그의 전과는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 Battle of Incheon)이 그의 마지막 명예다. 오판으로 1950년 겨울 대참패하며 미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경고를 허풍으로 치부해 미군을 중국군 30개 사단으로 몰아넣는 실수를 범하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만약 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너면 역사상 최대의 학살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결국 그 말은 그의 자신감과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현실이 된 셈. 미8군단과 10군단 선봉대는 단숨에 궤멸돼 미군 역사상 최대 참패라고 해도 될 정도다.
결국 맥아더가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선 중국과 전면전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대만군의 참전과 핵무기 투하까지 언급, 확전과 사망자의 증가 등은 정치가 문제지 야전 사령관인 자신이 상관할 바 아니라는 말까지 하자 결국 트루먼이 전쟁 지휘 중이던 맥아더를 파면한다. 동료 장군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모두 동의한 파면이었다.

1951년 퇴역식에서 그 유명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이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는 웨스트포인트의 훈련가 중 하나를 인용한 것.

 


맥아더가 퇴임한 뒤 뉴욕에서 시가행진이 열렸는데 70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였다. 그가 아시아에선 유명하지만 정작 미국에선 인기가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일본을 물리치고 2차대전을 종식시켰다는 자부심이 크고 거기에 큰 공헌을 한 것이 맥아더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던 아이젠하워는 이 일로 몹시 불안해했다고... 하지만 맥아더가 출마하는 일은 없었고 남은 12년동안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만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여담

 

1. 일본 최초이자 최후의 외국인 쇼군.

2. 맥아더 : "아이젠하워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중 최고의 사무원이다."

3. 1962년 김종필이 미국을 방문해 맥아더를 만났을 때 한 말.
"한국이 하루 빨리 통일하기를 바란다. 난 한국이 통일될 때까진 죽을 수 없다."

4.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를 보고 "70대 원수가 20대 소위처럼 하고 다닌다." "쟤가 대통령이냐, 내가 대통령이냐? 꼭 자기가 대통령처럼 행세하잖아!" 등의 말을 남겼다고.

5.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버릇이 있었다.